왈왈 님 발언문
안녕하세요, 조현정동장애와 공황장애를 가진 신경다양인이자 정신장애인인 왈왈입니다. 현장의 발언을 맡게 되었습니다.
신경다양성의 개념은 뇌신경 차이로 인해 발생되는 다름을 인정 하는 것입니다. 아직 정착화 하기보단 그 개념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폐스펙트럼이나 ADHD만 인정 했다면 조현스펙트럼, 조울스펙트럼, 성격장애스펙트럼 등등도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신경다양성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신경다양인과 정신장애인은 사실 스펙트럼입니다. 개념은 넓고요. 그래서 신경다양인 중 정신장애인은 등록된 장애인도 있지만 법외/미등록/경계선 장애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경다양성 정신장애인 중 재판정을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장애등록 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정신장애인도 병원이 아닌 지역 사회에 살고 싶습니다. 신경다양인으로 사는 기쁨은 저의 경우를 이야기 하자면 제 아픔이 사회에 도움 될 수 있을 때 기쁩니다. 제가 신경다양인으로써 정신장애인으로써 정신이 남들과 다른 사람들을 같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제 경험이 남들에게도 도움될 때 기쁩니다.
반대로 슬픔이 있습니다. 저는 차별 당할 때 슬픈거 같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들 정신질환이 있다. 단지 약을 먹을 정도로 심하나 아니나 차이 일 뿐 이라고요. 다들 하나씩 질병을 가지다가 살 수 있지 않습니까? 근데 왜 저는 차별을 받거나 언제 정신병원에 감금 되는 두려움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신장애인은 취업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콜(장애인콜택시)도 보행이 불가능 하다고 판정을 받고 보호자 하에 가능하다고요. 이동권도 노동권도 다 침해 받는 상황에서 슬픈 게 참 많습니다.
신경다양인인 정신장애인과 관계를 맺는 건 다양하다고 느낍니다. 증상이 일어나도 배려 받고 나쁜 시선으로 보지 않고요. 정신장애인이라도 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 하면 안 되지만 그냥 사람이라고 알려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만 살 수 있게 만들고 선택권도 없이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 걸 체험하고 선택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장애인 중에서 가족과 사이가 안 좋은데 집과 병원 밖에 갈 곳이 없어서 결국 병원에 간 사람도 있고 집 밖을 못 나가서 서비스 못 받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시민단체도 같이 함께 노력 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언을 마칠게요.
한상헌 님 발언문
안녕하세요. 약간의 주의력 결핍과 만성적인 기분장애로 고생중인 신경다양인 당사자 청년입니다. 오늘 발언을 하기 전, 신경다양성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신경다양성 운동을 간략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신경다양성 운동은 뇌신경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ADHD, 조현병, 자폐특성, 성격장애 등을 장애와 비 장애의 시각이 아닌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특징으로 포함시키려는 노력입니다.
여러분들은 살아오시면서 평범한 사람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조금 독특한 친구들을 종종 봐 오셨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무리에 속해 친분을 쌓지 않고 혼자 지내지만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몇 분 알고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잘 관심을 가지지 않는 어떤 학문분야에 조예가 깊다거나, 시각적인 능력이 뛰어나 3D CAD 같은 프로그램을 능숙히 다루는 친구들 말입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한 두번쯤 보셨던 조금은 유별난 친구들이 신경다양인이라 생각해 주십시요.
신경다양인 당사자인 저는 시각과 청각 등 감각기관이 민감해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번화가와 카페에 가기가 힘들고 공공장소에서 활동하는 것이 힘들지만, 어떤 사람과 단 둘이 있을 땐 상대방의 목소리, 표정변화에 아주 민감히 반응을 할 수 있기에 넌 내 마음의 변화를 참 잘 알아준단 얘길 자주 들어 왔습니다. 예민한 것이 단점이기만 할까요? 장점일 때도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성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각종 특성을 지닌 신경다양인 친구들과 친해지시거나 함께 일을 하시려면 이 친구가 어떤 특성이 있나 장애와 비 장애라는 선입견 없이 바라보기도 해 주십시오.
이어서 신경다양인 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발언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일터에서, 모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계실 것입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실 때 현대 의학의 기준만으로 평가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동현장에서 장애와 비장애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저는 생산직, 물류현장, 건설현장, 주방, 배달노동 현장에서 일을 해 왔고 온갖 성격특성, 행동특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을 해 왔습니다. 어떤 내용을 설명할 때 평범한 사람들과 조금 설명방식이 다르다거나 말투가 어눌하다거나 보통 사람들과 조금은 다르게 협업을 해야하는 경우를 봐 온 적이 있었지만, 같이 일을 하며 맞춰나가려 노력하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성이 보통사람들보다 조금 떨어진다거나 공감이 잘 안 되는 특성을 가진 사람을 장애인이다 장애인이 아니다 같은 양자택일의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신경다양인으로서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던 저를 미치게 했던 점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여러 노동현장에서 일을 해 왔습니다. 인간의 다양성과 질병과 장애에 별 관심이 없으신 분들께서 약간의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동료를 “회사 또라이”라 낙인을 찍고 다니셨고, 저 또한 “너는 우리 회사 미친놈이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습니다. 저는 저 “회사미친놈”, “회사 또라이”라는 얘길 들었을 때 처음엔 정말 슬프고 힘들었었지만, 곧 저만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들과 말투가 약간 다르고,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이 약간 다르고, 사회성이 동료들보다 조금은 떨어지는 저에게 붙여진 “우리회사 이상한놈”의 정체성은 상투적인 말투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행동만 허용하겠다는 갑갑하고 보수적인 조직문화에서 “비정상”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 타고난 잠재력을 묻어버린 채 남들 다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재미도 없는 워크샵과 회식에 강제로 참석해서 영혼도 없는 아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회사에서, 모임에서 어떤 정체성을 부여 받으셨나요? 당신을 정의하는 자의 논리가 당신의 전부입니까?
마지막으로 약자들의 노동권에 무지한 한국사회가 저를 빡치게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병을 가진 채 태어난 사람이나 산업재해로 인해 장애인이 된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적당히 먹고 살만한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 생각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약간의 신경정신과 질환을 앓으며 택배상하차 노동을 하던 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프레스회사에서 일하다 손목이 날아가 버린 산재 장애인, 나이 들고 일할 데가 없는 노년의 노동자,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직장 내 남성들에게 성추행당하고 이용만당하다 버림받은 젊은 여성노동자, 중년에 이혼하고 혼자서 살게 된 나이든 여성노동자 등 사회의 약자들 이었습니다. 몸의 어디가 아프고 정신적으로 아픈 곳이 있었지만 이들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회사가 없어서인지, 돈이 안 될 것 같아서 채용을 안해서인지 가장 열악한 마지막 일자리인 야간 물류현장까지 내몰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적자생존의 사회에서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약자들에게도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의 긴 발언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리얼리즘 님 여는 말
안녕하세요, ‘약자생존’ 행진 사회를 맡은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의 리얼리즘입니다. 발언을 진행하기 전에 이번 행진의 컨셉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약자생존 행진은 ‘느릿느릿하고 돌아버린 행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느릿느릿’해야 할까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돌아갑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세상은 ‘표준적인’, ‘전형적인’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 맞춰서 돌아갑니다. 빠른 흐름에 몸을 자유롭게 맡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에게 맞춰집니다. 시스젠더 남성, 비장애인, 다수자 남성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 사회에 자신을 끼워맞추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약 먹을 시간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통증과 피로를 지속적으로 겪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맞춰서 살아가야 한다는 불문율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n개의 다른몸들’은 세상의 흐름과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부지런해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너무 느리게 지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노력을 시작하기에도 벅찹니다. ‘표준 시간대’는 ‘정상성’과 다른 몸들을 배제하며 흘러갑니다.
다른 몸들의 시간대는 소수자의 시간대와 겹쳐 흐릅니다.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에게만 맞춰진 주류 사회에서 여성과 비남성, 성소수자들은 항상 ‘표준’과 ‘기준’에서 벗어납니다. 가난한 사람들, 배움의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사람들, 지방에 사는 사람들, 아동과 청소년들 역시 ‘표준’에 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자들을 끊임없이 밀어내는 ‘표준 시간대’와 ‘정상성’은 과연 옳을까요? 다른 몸들과 약자, 소수자의 의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나고, 교차하고, 섞입니다.
‘정상성’을 강요당하는 우리는 ‘돌아버립니다’. ‘정상병원’에서 ‘돌아버립니다’. 그리고 이 길을 ‘돌아버립니다’. 우리는 약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를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 사회도 함께 ‘돌아갑니다’.
우리는 ‘정상성’을 거부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정상성’을 가진 ‘표준적인’ 몸에 맞춰 흘러가는 ‘표준 시간대’를 거부하고 교란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행진 루트는 ‘표준적인 몸’으로 2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길을 1시간에 걸쳐 걸어갈 것입니다.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는 세상의 질서를 지연시키고 균열을 낼 것입니다. ‘돌아버린’ 우리가 이 세상을 평등한 세상으로 돌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함께 ‘느릿느릿’ ‘돌아버립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