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신병력은 '알 권리'의 대상일 수 없다
- 정신질환 여부는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강윤형 씨가 지난 20일 매일신문 유튜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두고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라 지칭했다. 이재명 후보 측은 이것이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과 허위사실유포에 해당함을 지적하면서 반발하였고, 강 씨의 배우자인 원희룡 국민의힘 경선 후보는 사과를 거부하였다. 이에 청년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는 원 후보에게 정신장애인들에게 사과하라는 논지의 논평을 발표하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유명인의 정신질환을 공개적으로 추측하는 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자신의 내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김현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현병 스펙트럼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하였으며, 유명 배우가 급성 경조증이라고 SNS에 적어 비난을 산 바가 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 윤리규정 중 하나인 골드워터 룰(Goldwater rule)에 따르면,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직접 진찰하지 않은 공적 인물의 정신건강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한 개인의 정신건강 상태는 매우 민감한 의료 정보와 사생활에 해당하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비난이 심한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정보는 당사자가 원하는 방식과 범위 내에서만 공개되어야 하며, 그것이 대중에 밝혀진다 해도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 누구도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비난이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이러한 행태를 보면, 한국의 정신의학계 전반이 윤리 강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상당히 의문스럽다. 골드워터 룰을 떠나, 타인의 의료 정보를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상식을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사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더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원희룡 후보의 발언이다. 원 후보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의 건강과 정신건강은 사생활이 아니라, 프라이버시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에 관한 정보입니다.”라고 발언하였다. 이 발언은 정신질환이 있는 대통령 후보는 국민의 안전을 해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의학적, 사회과학적 근거도 없다. 업무 능력을 따져보아도 관해(寬解, 약물 등의 최소한의 관리로 완치에 가깝게 호전된 상태)된 정신질환자의 인지 능력은 비정신질환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원 후보의 이러한 발언은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에 대한 명백한 혐오 발화이다.
우리는 원희룡 후보 부부와 정신과 의사들에게 말한다. 정신질환은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다. 누구도 정신질환으로 인해 비난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이 당연한 진리를 모두가 깨닫는 날이 오길 바란다.
2021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