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다 활동/칼럼

신경다양성과 성소수자 – 신경다양인 퀴어가 여기에 있다

- : 세바다 활동가 익명 익명 B

- 편집: 세바다 단체 대표 리얼리즘

 

 

  세바다 모임방에는 퀴어(성소수자)인 신경다양인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세바다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많은 연구 결과들은 신경다양성과 퀴어성이 유의미한 관계를 보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다양성을 지닌 퀴어의 삶은 가시화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세바다 활동가 익명 A 님과 익명 B 님과 함께 신경다양인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안녕하세요. 조현정동장애와 공황장애를 가진 FTM 트랜스젠더 익명 A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저의 정체성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조현정동장애란 조현병과 조울증 또는 우울증이 합쳐진 질병입니다. 조현병은 당사자만 들리는 환청, 거짓된 믿음인 망상, 그리고 직업적, 사회적 능력이 떨어지는 음성증상, 지남력(현재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이 낮아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정동장애는 기분이 들뜨고 일을 벌이거나 돈을 많이 쓰는 조증과 우울하고 자살충동을 느끼고 무기력을 느끼는 우울증이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는 세 가지 형태가 있는데, 조증만 있는 조증형, 우울증만 있는 우울증형, 그리고 조증과 우울증이 있는 혼합형이 있습니다. 조현, 조증, 우울증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조현정동장애의 신경다양성 여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세바다에서는 신경다양성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공황장애와 가끔 쓰러지는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란 태어난 직후 의사에 의해 지정된 성별과 지금 정체화한 성별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젠더 디스포리아(지정성별과 정체화한 성별이 달라 느끼는 불편감)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투여 혹은 성확정 수술을 합니다. 보통 FTM, MTF, 논바이너리로 나눠집니다(FTMMTF라는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도 존재합니다). FTMfemale to male로 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이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것입니다. MTFmale to female로 지정성별이 남성인 사람이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것입니다. 논바이너리는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인 체계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설명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제가 겪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퀴어방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떤 단체의 성소수자 채팅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환청이 잦기 때문에 환청이 들린다는 이야기를 그 방에서 했는데, 몇몇 사람들이 운영자에게 뒷말로 왜 환청 들린다고 이야기하냐고 웅성댔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감기에 걸렸다고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에서 환청이 들렸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운영자에게 뒷말을 하다뇨? 감기도 조현 스펙트럼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감기는 급성이고 조현 스펙트럼은 만성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병원에 있었던 일입니다. 병원에서 의사랑 매번 싸웠습니다. 저를 위험하게 취급하거나 준범죄자로 취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조현정동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렇게 대했습니다. 진료거부를 하는 병원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정신질환, 다양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험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취급하곤 합니다. 이것도 역시 차별입니다. 저는 위험하거나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의사는 성소수자를 혐오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제가 남성이라는 걸 믿지 않았습니다. 저의 남성 정체성을 망상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남성병동이 아닌 여성병동으로 입원시켰습니다. 성별로 구분된 병동은 불편했습니다. 탈입원을 외치고 싶었습니다. 당사자의 성소수자성까지 고려하는 좋은 의사, 좋은 병원을 만나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야기는 교회 이야기입니다. 저는 정신이 너무 아파서 단체에 적응 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만 열심히 다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다닌 교회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감리회 게시판이나 언론 댓글에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담임 목사님을 욕하는 글이 많았습니다. 정신이 아파서 교회로 도망쳤는데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정죄하는 교회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상처를 받았습니다.

 

  성소수자이면서 신경다양인인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똑같지 않습니다. 각자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각자 조금씩 경혐도 다릅니다. 저의 삶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제 자신이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되길 원합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게 있다면 저는 교회를 좋아하는 그리스도교 덕후입니다. 이런 저와 당사자들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차별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이며 동시에 양극성장애 당사자에 속하는 트랜스여성 영역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익명 B라고 합니다. 저도 제 이야기를 비롯한 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우선 자폐 스펙트럼은 스펙트럼이라는 이름답게 사람마다 증상의 범위가 꽤 넓게 나타나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제 정체성은 과거에 흔히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알려진 그것입니다. 아동기의 언어적 발달을 비롯한 지적능력 및 학습능력에는 큰 문제가 보고되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숫자에 매료되는 등의 특징이 있고, 사회화가 비장애인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그 외 눈 마주침이 어렵다든지 인간관계 상 비언어적 상호 관계가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사회적 지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육자의 입장에서 자녀의 이러한 특성이 큰 문제로 느껴지는가는 양육자의 성향에 따른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저 역시도 20대 중반이 되고 나서 제 돈으로 직접 병원을 찾아 심리검사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판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에 양극성장애(조울증)가 발병하게 되어 조증 상태와 울증 상태 간의 감정 격차가 상당히 큰 상황입니다. 그 외 상세불명의 정신증과 강박 및 불안장애 등의 질병코드를 갖고 있습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서 논바이너리는 비이분법, 탈이분법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이른 나이부터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게 된 저는 호르몬 대체 요법(HRT)을 비롯한 트랜지션 과정(자신이 정체화한 성별로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 돈을 벌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회가 되는 대로 정신과를 찾아 F64.0(Gender Dysphoria)진단서를 받고자 하였으나, 이쪽 진단서 발급으로 유명한 서울의 모 정신과에서조차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진료 거부를 당하기도 하였고, 결국 20대 중반이던 20189월에 다른 병원에서 F64.0 진단을 받고 호르몬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혈육을 제외한 사람들의 공간이 저에게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 부분도 있는 한편, 마냥 안심이 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의 신경다양인, 신경다양인 커뮤니티에서의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로 안심하기 힘듭니다. 어떤 공간에서 어느 한 정체성을 존중한다고 해서 다른 정체성을 존중하리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다른 커뮤니티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직접적인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신경다양인 성소수자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 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성소수자 모임에서도 섞이기보단 비주류로 겉돌고, 신경다양인 모임에서도 저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것도 그랬습니다.

 

  이렇듯 성소수자 신경다양인의 삶은 성소수자로서도, 신경다양인으로서도, 그리고 둘 다인 사람으로서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는 다른 경험을 하고, 그럼에도 모두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