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정신적 장애인은 보편인권의 예외가 될 수 없다
- 독립된 인격체로서 정신적 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하라
지난 6월 18일, 엄태영 의원 외 10인의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정부가 보호자의 신청을 받아 정신장애 당사자, 자폐 당사자, 지적장애 당사자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발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실종아동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제안서에서 발의자들은 실종된 사람이 휴대폰 등을 소지하지 않은 경우 (실종방지)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고, 대표발의자인 엄 의원은 “지적장애‧치매 등의 특성을 고려하여 실종 시 조기 발견이 가능한 맞춤형 대응체계 확립이 시급하다”라고 밝혔다.
법률안 회부와 동시에 정부와 지자체도 일제히 발달장애 실종 ‘예방’에 나섰다. 7월 2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대기업이 ‘배회감지기’의 제작 및 보급을 발표했으며, 경기도, 인천시 남구(미추홀구)와 강화군, 서울시 송파구도 '스마트지킴이' 확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실제 개정안 원문을 보면 이것이 정말로 정신적 장애인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며, 이 법이 정신적 장애인의 인권과 자유를 옭아매는 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어난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신적 장애인의 실종 예방을 위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보호자의 신청만으로 정부가 위치추적장치를 발부, 지원할 수 있다. 게다가 정신적 장애인의 보호자가 요청하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도 당사자의 위치가 모두 드러나게 되어 장애인 개인의 ‘배회’를 막는다. 이는 헌법 17조와 18조에 규정된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비밀의 자유, 장애인권리협약 22조(사생활 보장의 권리), 14조 1항(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을 침해하는 것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은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사생활 없고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하게 될 터이니, 탈시설지원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개정안이 이렇게 된 데에는 모든 정신적 장애인이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주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당사자의 감정과 의사를 발의 과정에서 지속해서 무시해 온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이는 정신적 장애인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표명하도록 규정한 정신건강복지법 2조 9항, 발달장애인법 2조 3항 및 유엔장애인권리협약 4조 3항을 위반한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UN CRPD 위원회로부터 정신적 장애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철폐하고 모든 정신건강서비스를 당사자의 자유로운 동의를 바탕으로 제공할 것을 권고*받은 바가 있다. 이 법은 UN의 이러한 권고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며, 모든 생활영역에서 법적 능력을 누릴 권리를 천명하고 있는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 2항과도 배치된다.
이렇게 심각한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실종아동법 개정법률안이 정신적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것을 우리는 용납할 수 없다. 지난 권위주의 정부 시기에 경험했던 블랙리스트, 사찰 등과 같은 인권침해가 장애를 이유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의 실종 방지가 아무리 중요한들, 보호자의 안심이 정신적 장애인의 인권보다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보편인권의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외 없는 세상을 위해 정신적 장애인들은 끝까지 연대하며 투쟁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대한민국 국회,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은 해당 법률안(의안번호 21-10865호)를 심의하여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 완전히 폐기하라.
-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지방자치단체는 당사자 인권 보장 조치 마련 전까지 해당 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정신적 장애인(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들에게 사과하라.
- 국회와 행정부,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적 장애인과 관련된 정책 수립에 있어서 장애인 당사자의 직접 참여를 즉각 보장하라.
- 현행 실종아동법을 법 이름부터 시작해 아동과 성인의 특성을 존중하며 실종아동, 실종 장애 성인을 포함한 모두의 인권을 포괄하도록 전면 개정하라.
2021. 8. 6.
(사)정신장애인권연대 KAMI,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준),
성인자폐(성)자조모임 estas, (사)발달장애인과세상걷기, (사)한국장애인연맹
*) ‘위원회는 당사국(한국)이 정신, 지적장애를 포함하여 장애를 근거로 한 자유의 박탈을 허용하는 기존의 법률 조항을 철폐하고 모든 정신보건 서비스를 포함한 보건 서비스가 당사자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를 바탕으로 제공되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채택할 것을 권고한다.’ (UN 장애인권리위원회, 2014 – CRPD/C/KOR/CO/1, 26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