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차별금지법 청원 성립, 다음이 중요하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 성립에 부쳐
기쁜 일이 일어났다. 지난 6월 14일,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가 올린 차별금지법 제정 국회 청원이 22일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모아 최종적으로 성립되었다. 이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필두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바라온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환영 의사를 밝혔고, 세바다의 구성원 또한 이에 함께하였다.
차별금지법 청원 성립은 분명 그 자체로 의의가 크다. 그러나 청원 성립이 끝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험난한 길이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청원 성립 후 법이 실제로 통과되는지, 그 과정에서 핵심 내용이 개악되지 않는지를 주권자로서 감시해야 한다. 국회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정신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인들, 보수 개신교계와 밀접히 관련을 맺은 정치인이 많으며, 이들이 반대 세력과 결탁하여 차별금지법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 법안이 공개된 이후로 6번이나 발의되었으나 2021년 현재까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보수 개신교계와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들의 ‘나중에’를 가장한 ‘표 계산’이다. 차별의 피해자들이 득표율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진 정치인들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본회의에서 표결조차 부치지 않고 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에 찬성하였다. 차별금지법이 이미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였음에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국회의원들의 태만함도 한몫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해당 청원은 소관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되었다. 국회청원 웹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위원회는 청원에 대한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할 것인지, 부의하지 않고 폐기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여기서 청원을 정식 채택하게 되면 본회의에서 심의와 의결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청원의 맹점은 위원회가 심사를 무제한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법 125조에 따르면 위원회는 90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보고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60일의 범위 내에서 심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심사를 요하는 청원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추가 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 결국, 위원회가 법안을 처리할 의지가 없는 경우에는 장기간 시간을 끌다가 관심이 사그라들었을 때 폐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다음을 봐야 한다. 차별금지법 청원 성립이라는 기쁨을 만끽하되, 기력을 아껴서 차별금지법이 그 가치를 난도질당하지 않고 무사히 통과되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자. 차별금지법을 외면하는 정치인들에게 계속 압력을 가하자. 국민이 가진 주권을 당당히 행사하자. 차별금지법이 온전하게 통과되는 그날, 마음껏 축배를 들 수 있도록 말이다.
2021년 6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