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익숙한 혐오를 종결할 때가 왔다
- 정신장애와 신경다양성을 비하적으로 사용하지 말라
정신장애와 신경다양성을 비하적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언론계에 늘 존재해왔다. 2021년 1월 30일 게재된 조선일보의 칼럼도 그랬다. 바이라인조차 명확하지 않은 이 칼럼에서, 해당 필자는 국내에서 월성 원전을 폐쇄시킨 후 북한 원전 건립을 추진해온 정부를 ‘정신 분열적 행태’, ‘국가 자해 행위’라고 비난했다. 칼럼마다 혐오 발언을 넣는 조선일보의 이 같은 행태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정신장애인과 신경다양인, 그리고 비정신장애인과 비신경다양인 모두에게 이러한 혐오 발언은 매우 익숙한 일이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 발언은 비단 정신장애계만의 의제는 아니다. 이들 혐오 발언이 우리 신경다양인들에게도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그런 혐오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5일에도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권을 ‘자폐적 세계관’이라고 비난하였다. 자폐계를 비롯한 신경다양인 동지들은 이에 대해 깊은 우려가 담긴 문제 제기에 나섰고 그 결과 해당 표현은 현재 수정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일보는 정신장애인은 물론 신경다양인에 대한 몰이해를 계속 드러내왔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속하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정신장애인보다도 가시화가 되지 못한 신경다양인에게 잔인한 모습을 내보였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 따르면, 총강 6번에 “언론은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편견 등에 의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용어 선택과 표현에 주의를 기울인다.”라는 규정이 있다. 동 준칙 3장에서는, “통상적으로 쓰이는 말 중 장애인에 대해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는 관용구를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규정이 존재한다. 이러한 준칙을 지켜야 하는,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메이저 언론사로서 준칙을 선도해야 할 위치에 있는 조선일보는 기자와 언론사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우리가 조선일보의 행태에 크게 분노하는 이유이다. 조선일보는 이미 혐오 발언 없이는 기사를 쓰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으며, 정신장애인과 신경다양인 외에도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비하 발언이 넘쳐난다.
조선일보는 해당 칼럼에 대한 반대 여론을 인식한 듯 칼럼의 필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 칼럼을 작성한 필자 외에도 칼럼의 혐오 표현을 제대로 확인하고 거르지 않은 데스크와 조선일보사 본사에도 책임이 있다. 이에 우리는 조선일보에 해당 표현에 대해 사과할 것과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조선일보에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을 집중 확인하고 단속하는 태스크 포스를 세울 것을 요구한다.
이번 문제가 조선일보만의 문제라고 여겨져서는 안 된다. 정신장애와 신경다양성에 대한 혐오는 이미 온 사회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조선일보의 소수자 비하를 묵인하고 문제 제기에 소극적이었던 정치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정신장애와 신경다양성 범주를 포함한, 혐오 발언 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준칙을 만들었음에도 자정 노력을 보이지 않은 언론사들에게 혐오 발언의 법적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정신장애와 신경다양성에 대한 혐오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러나 익숙함은 합리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어떤 익숙함은 불합리하고 특정 구성원들에게 가혹하다. 그러니 정신장애인과 신경다양인을 속박하는 ‘익숙한 혐오’를 끝내자. 그 길에 우리 세바다가 함께할 것이다.
2021년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