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다 활동/칼럼

<신경다양인의 공부법> 도파루파님 인터뷰

- 인터뷰어: 세바다 단체준비위원회 대표 리얼리즘

- 글 및 편집: 세바다 단체준비위원회 대표 리얼리즘·세바다 단체준비위원회 활동가 왈왈

 

  정신적 장애인·정신질환자(신경다양인)에 대한 편견 중 하나로, 그들은 정신력과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란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뇌 기능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두뇌 활동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사자들도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학업을 포기하거나 저숙련 일자리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 속에서 지적 성과를 이루어내는 당사자들이 있습니다. 세바다는 지적 성과를 이룬 신경다양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신경다양인에게 적합한 학습 방법과 자기계발 팁, 마음가짐 관리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도파루파 님은 과거 ADHD인의 자기계발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멈추지 않는 도전으로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에 성공하셨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도파루파 님께 감사드립니다.


  1.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후후, 저는 도파루파(주로 됴됴로 불립니다)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에너지 넘치는 ADHD인입니다!

 

  2. ADHD 당사자라고 하셨는데 관련하여 현재 상태는 어떠십니까?

  진단받은 지는 2년이 되었고, 258, 대학교 4학년 막학기를 앞두고 받았습니다!! (웃음) 1년 동안 스트라테라(ADHD 치료제)로 치료를 하다가 최근에는 콘서타(ADHD 치료제)로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약물 치료 이외에도 플래너를 쓰면서 하루 계획을 세우고 피드백을 하면서 셀프 인지행동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웃음) 지금은 시험에도 합격하고 취직도 하고 치료 초기보다 좀 더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학창시절에는 어떤 공부습관을 가지셨고 어떤 성과를 얻으셨나요?

  고등학생 때는 정말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1,2학년까지는 과제를 제때 낸 적도 없고 수업시간에는 잠만 잤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과목을 열심히 해서 내신 4등급대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1등급이었습니다. 비록 문과였지만요……. (웃음) 학교 수업보다는 그 외 학교생활에 관심이 더 많아서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거나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거나 인형을 만들어서 기부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더 힘썼던 것 같습니다.

 

  고3 때는 공부를 시작해서 나름 성적을 많이 올렸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이 도와주시기도 했고 공부에 관심을 가지니까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공부 계획을 세워서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미소) 마침 고등학생 때 생활기록부 있어서요, (웃음) 그래도 고3 때는 공부를 했다는 것이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걸로 대학을 갔어요!! (웃음) 아무튼 하나 꽂히면 그것만 파는 ADHD식 입시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침 입학사정관제 같은 제도가 생기기도 했고 아마 지금이었으면 대학 못 갔을 겁니다. (크게 웃음)

 

(생기부) 학습 분야에서 자신의 강점과 취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과시간 집중할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마다 각 교과교사에게 쉴새없이 질문을 하는 집요함으로 한결같이 모든 교과담당교사로부터 ‘도파루파 학생처럼 공부하면 성공한다’라는 평을 받을 정도임.

 

  대학생 때도 말해주면 되나요? 전형적으로 고3 때 공부해서 성적이 오른 케이스였어요 (미소)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갔는데 과제 기간을 지키거나 강의시간에 맞춰서 가는 등 시간 약속을 너무 못 지키는 거예요. 다른 애들은 뚝딱 하는데 저만 손도 못대고 있고. 그래서 대학을 간 지 3개월 만에 자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2년을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보냈는데 당연히 공부가 될 리가 없었어요. 두 번째 수능을 망쳐서 세 번째 수능을 보고 교육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ADHD 당사자인지 모르고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사범대면 모범생이 모인 곳이잖아요? 엄청나게 위화감이 들고 적응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우울 등의 문제로 학교 상담센터에서 약 3개월 동안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아무도 ADHD라고는 생각 못했지만요. (웃음)

 

  그러다가 계절학기에 들었던 교양 프랑스어가 너무 재밌어서 프랑스언어문화학과로 전과를 했습니다. 충동적으로 말이죠. (크게 웃음) 처음에는 외고 출신도 있고 해외파도 있고 너무 충동적이고 생각없는 선택이라고 자책을 했었는데, 학원을 다니지 않고 과몰입의 힘으로 DELF B216개월 정도 걸려서 땄던 것 같아요! (웃음) 졸업할 때 필요한 자격증이에요! 프랑스에 유학 갈 때도 필요한 수준입니다. 한 번 빠지면 그것만 생각하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ADHD 당사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여전히 출석은 잘하지 못했지만요. (웃음) 왕복 3시간 통학을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과목은 꼭 출석했어요. (크게 웃음)

 

  4. 과거에 비해 현재 공부 습관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그 전까지는 공부 계획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대학에 와서도 시험 전날에 벼락치기를 했습니다. 그것도 친구가 없으면 안 했습니다. 친구랑 같이 과방(대학교에서 각 과마다 배정되어 있는 다용도실)에서 공부하면서 노는 게 재밌어서 벼락치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4학년 1학기 때 2.16이라는 엄청난 학점을 받게 되고 취업 준비에 대한 압박과 불면증으로 인해 조울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번도 ADHD를 의심하지 않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제 과거 이야기를 듣고 ADHD를 의심하시면서 진단받게 되었어요. 약물 치료와 함께 시작했던 건 플래너 쓰기였습니다.

 

  플래너를 사용하면서 시간을 관리하는 연습을 했고 치료를 시작한 4학년 2학기에는 학점 3.6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웃음) 1.5점이 올랐죠! 그리고 졸업을 하고 나서는 경기인력개발원에서 장비 프로그래밍을 배웠어요. 그때부터는 자격증 준비를 많이 했는데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서 그런지 공부가 좀 수월했던 것 같아요. (미소)

  (사진 1-자격증 시험 목록)

 

  (사진 2-독서 목록)

 

  이런 식으로, 준비해야 하는 시험, 읽을 책들을 정리해서 눈으로 진도를 확인하면서 제가 해왔던 성취를 다시 생각하고 용기를 얻고 추진력을 얻었던 것 같아요. 정리의 힘입니다. (미소) 저건 제가 진단을 받은 지 1년이 지난 후, 그때부터 봐온 자격증 시험들이에요. (웃음) 저렇게 정리해 놓으니까 자존감도 생기고, ADHD 당사자인 저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성취할 수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4-1. 목표를 시각 자료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청각 자료나 줄글보다 시각 자료를 사용할 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제가 진짜로 글을 대충 읽어요. (웃음) 일기를 써도 다시 읽지 않고요. 그래서 표나 그림으로 정리해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는 편이 좋더라고요. 제 블로그 알려드릴게요! 제가 진도표 만들어 놓은 게 있어요. (웃음) https://blog.naver.com/inesdecorea 거기 자격증 카테고리 가면 볼 수 있듯이 저는 책을 사면 목차를 다 엑셀에 정리해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제가 공부한 부분을 체크할 수 있게 정리해 두고 있어요!! 눈으로 볼 수 없으면 제가 뭘 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크게 웃음) ‘시각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4-2. 플래너 쓰기가 공부 습관을 확립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공부 습관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도 좋은 영향을 미치셨나요?

  저는 애초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공부를 시작도 못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미소) 물론 계획은 계획이고 수행은 수행이더라고요. 그래도 확실히, 계획을 잘 짜놓으면 몸이 움직여요. 저는 뭘 시작할 때 굉장히 충동적이고 흥미에 이끌려서 하는 사람이지만 막상 내가 이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어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막상 해보고 성취하는 경험을 하고 나니까 나라고 왜 안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바뀐 것 같아요.

 

  ADHD인들은 좋은 대학을 가고 남들이 보기에 좋은 성취를 했어도 무언가를 계획하고 차근차근 수행해서 이룬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운이 좋아서 그렇게 성취했다고 생각한 거죠. 저도 그랬는데, 스스로 계획하고 그 계획을 조금씩 지키고 성취하는 경험을 하니까, 운도 운이지만 노력이라는 것을 해서 성취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용기가 생기고 자기효능감이 높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아직도 제가 공무원 시험이나 전문직 시험 같은 건 불가능할 거라고,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ADHD 니까, 그런 장기적인 노력이 드는 성취는 못 이룰 거야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증상 안에 가두고 한계를 긋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근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고 작은 성취들이 모이고 모이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소)

 

  4-3. 플래너 초보자에게 추천할 만한 팁이 있다면 알려줄 수 있으신가요?

  계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요? (웃음) 저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웃음) 그래서 계획을 지키지 않아도 그 다음날 멀쩡히 새 계획을 세우죠. (크게 웃음) 가끔 보면 강박적으로, 완벽주의적으로 꼭 계획을 세우면 지켜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그 계획을 지키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자신이 하루에 가진 시간을 파악하고 여유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걸 지키고 수행하는 건 또 다른 것이고요. ‘내가 못 지켰으니까 계획 짜는 걸 포기할 거야.’ 가 아니라 지키지 못했으면 계획을 왜 못 지켰는지, 어떻게 하면 수행력을 높일 수 있는지 피드백해서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짜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획 짜기랑 짧게라도 피드백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음날에는 어떻게 할 건지 오늘은 무엇이 부족했는지 생각해보고, 실패가 실패로 머무르지 않게, 실패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요. 계속 실패하면 사람이 무기력해지니까 합리화하는 거예요. (미소)

 

  (사진 3-피드백 노트 사진)

 

  그리고 진짜 트위터에 완전 J 인간(성격유형검사인 MBTI에서 마지막 자리가 J인 사람. 이들은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것을 즐긴다) 공부계(주로 공부와 자기 계발에 대한 내용을 올리는 SNS 계정을 뜻한다.)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랑 ADHD 당사자를 비교하면 절대 안 됩니다. (웃음) 마치 10시간씩 앉아서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사람 보면서 나는 왜 그렇게 못하지생각하는 거랑 같아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같은 ADHD 당사자끼리도 비교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성취라는 것은 개인의 노력 말고도 가정환경·학력·주변인·경제력·타고난 능력 등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얻어지는 거고, 모든 게 비슷해도 인내력이 낮거나 불안이 높거나 자극 추구 성향이 너무 커서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으면 무언가를 꾸준히 해서 성취하기라는 미션이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감안하지 않고 쟤는 하는데 왜 나는 못하지?’라고 생각하면 끝없는 고민에 빠지고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어요.

 

  트위터에서는 특히 지능이 큰 이슈인데요 (웃음), 너무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풀 배터리(종합심리검사를 이르는 말로, 지능 검사, 정신질환 검사, 성격 검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에서 좋은 결과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성취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냥 뭔가 실패해도 뭐가 하나 부족했나 보다~ 좀 아까웠다~’ 이러면서 가볍게 넘기고 다음 플랜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영원히 실패한다고 해도 그게 만약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느껴진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생각하고, 환경적·경제적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주변을 원망하지 않고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고 스스로 해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어렵겠지만 단 하나의 길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의 충동과 우연한 선택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준다고 생각하기로 해요. ‘정답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기왕 새로운 답을 찾아 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웃음) 세상에 답이 없는 문제는 생각 외로 많지 않고 그냥 답이 많을 뿐이죠!!! (크게 웃음)

 

  5. 수많은 자격증에 도전하여 좋은 성과를 내셨는데요,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사나 토익처럼 모두가 따는 자격증 말고 제가 지금 하는 일에 가장 필요하고 가까운 자격증을 골라서 공부하는 편이에요. (미소) 그러면 일을 하면서 하나씩 더 배울 수 있고 금방 적용할 수 있고 더 관심도 가요. 관심이 없으면 공부가 안 되는 게 ADHD인이잖아요. (웃음) 저는 업무에서부터 그 흥미를 일으키려고 정말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내가 지금 무엇에 흥미가 있는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공부하는 편입니다. 자격증도 그렇게 고르는 편이고요. 관심이 없으면 확실히 떨어집니다. (웃음) 만약 공기업 취업이 목표라서 토익을 준비하고 NCS(국가직무능력표준의 영문 줄임말로, 공기업 입사에 필요한 적성검사이다)를 공부하고 한국사 시험을 준비했다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는 전공 18학점을 전부 프랑스어로만 들었고, 일본어 자격증(JLPT N1)을 딸 때는 일본어 전공만 듣고 일본어 연극도 했어요! 문제집은 사놓고 거의 풀지 않았지만 시험은 전부 붙었어요. (미소) 시험이라고 해서 꼭 수험서를 펴놓고 기출문제를 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심과 흥미가 있는 것을 고르면 결과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ADHD 당사자는 흥미가 없는 것은 정말 못하지만 흥미가 있는 것은 정말 열심히 하잖아요. 남들 모르는 TMI(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로 쓸데없는 정보를 의미한다.)까지 찾아보는 등 그걸 좀 이용한 것 같습니다. (미소)

 

  6. 시험에 실패하셨을 때 마음을 어떻게 추스렸습니까?

  운이 좋게도 기억력이 나쁩니다……. (크게 웃음) 보통 시험에 떨어지면 바로 다음 회차를 위한 계획을 짜는 편입니다. (웃음) 그러다 흥미가 떨어지면 또 금방 포기해 버리긴 하는데,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웃음) 미련도 없고~ 기억력도 나쁘고~ (크게 웃음) 떨어져도 보통 공부했던 것이 다른 것의 베이스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걸 이용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미소) 가끔 내가 멍청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냥 남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했나 보다하고 생각합니다. ‘내 노력이 부족했나 보다’, 절대 내 능력이나 타고난 지능이 부족했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회복하기 힘드니까요. 노력은 하면 되는 건데요.

 

  6-1. 떨어지셨을 때 좌절감이나 다른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는 않으셨나요?

  당연히 생기죠. ‘내가 머리가 나쁜가?’ ‘내 노력이 부족했나?’ ‘더 공부할걸후회도 하죠. 그럴 때는 꼭 피드백을 합니다. 뭐가 문제였는지 실패를 그냥 실패로 두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피드백을 하면 실패가 경험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왜 했는지, 뭐가 부족했는지, 다음에 뭘 하면 더 좋을지 생각하면서 또 그것을 성취하는 자신을 생각해요. (미소) 어차피 다음 회차 시험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컴퓨터활용능력 2급 실기를 4수를 했단 말이에요. (크게 웃음) 남들 한두 번에 붙는 거 보면서 나는 컴맹인가코딩에는 더더욱 소질이 없겠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조금 자책의 시간이 지나서 감정이 사그라들면 다음에 이 문제에서는 이렇게 하고 차트 문제에서는 이런 걸 신경 써야겠다!!’ 하면서 피드백을 해요. ‘실패가 아니라 시행착오다라고 합리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도 제가 ADHD를 진단받은 게 큰 것 같아요. 그냥 제가 ADHD 당사자라서 남들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겪는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실패할 수도 있지!! 나는 ADHD니까!!’ 이러면서 데미지가 깎입니다. (웃음) ‘그냥 한 번 더 하지 뭐. ADHD니까 실패해도 괜찮아. 통계적으로 다들 실패할 거니까 나는 특별히 못한게 아냐이러면서요. (크게 웃음) 물론 한 번에 성공하는 잘나가는 ADHD 당사자인 트친(트위터 친구의 줄임말)들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들지만요. (웃음) 만약에 진단을 받지 못했다면 왜 나는 남들만큼 못할까생각했겠죠? ‘왜 평범한 사람들보다 못하지, ‘정상성에 가깝지 않지? 왜 평균에 못 미치지?’ 그런데 지금은 그 정상성평균에서 자유로워진 느낌이에요. 물론 여전히 공기업 대기업 준비하고 붙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지만, 저는 흥미를 따라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자유롭게 사는 삶이 더 잘 어울리고 행복한 것 같아요. (미소) ADHD 진단이 일종의 이정표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웃음) 어디로 가도 괜찮다는 이정표 말이에요!!

 

  7.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요, 다른 신경다양인들에게 알려주고픈 소소한 팁이 있으신가요?

  ‘스스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부모이자, 선생님이 되어주자!’가 제 인생의 다짐입니다. (미소) 힘들 때 자책하지 말고 늘 응원하고 토닥이는 친구가 되어주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반성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그치는 부모가 되어주고, 자신이 가진 장점과 단점(‘증상이라고 불리는)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선생님이 되어주기요.

 

  스스로에게 잘해주고 자신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남과 비교해서 상처주지 말고, 내가 나의 길을, 나만의 인생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고 응원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작은 실천은 내 방을 청소해서 내게 청결하고 상쾌한 방을 제공하기,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차를 마셔서 기분을 좋게 하기, 자기 전에 향이 좋은 향초를 켜고 명상하기처럼 작은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친구랑 호캉스를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편이에요. 자기 전에는 페퍼민트 바디워시로 샤워를 하고 머리맡에 캔들워머(초를 따뜻하게 데우는 장치)를 켜고 SNS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요. 생활 속에서 사소한 즐거움을 루틴(일상적인 일)으로 만들어요. 다들 스스로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마치 가장 소중한 친구, 애인을 대하듯이 작은 것부터 챙겨주고 기분을 좋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미소)

 

  8.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어떤 진단을 받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이유나 설명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신경다양인이라면 진단과 함께 내가 이래서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미소)

 

  저에게 ADHD 진단은 내가 정상성을 추구하기에는 태생적으로 어렵다는 판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동시에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해도 된다는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불안하지만 가끔은 그런 점이 설렙니다. (미소)

 

  사실 지금은 자주 실수를 하고 하루종일 이상한 상상을 한다는 것을 빼면 정말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고, 동료들과 일을 하고 술자리를 가지고정말 평범한 20대 후반 여성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험을 좋아하고 조금 엉망인 평범한 어떤 여자입니다.

 

  가끔 그 엉망임이 저를 괴롭히기는 하지만 세상은 엉망인 채로 살기에 나쁘지 않더라고요. 제가 덜 엉망이어서 그런가요. (미소) 세상에 제 엉망임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여러분이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는 부분이 어쩌면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ADHD인은 실수를 하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러나 목표 달성 실패는 당사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단지 그간의 전략이나 학습 방법이 신경다양인에게 적합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또한 도파루파 님의 성과와 독자 여러분의 성과를 비교하며 속상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인터뷰는 신경다양인과 독자 여러분이 오늘보다 조금 더 멋진 내일을 살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이 신경다양인의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도파루파 님과 모든 신경다양인 그리고 독자 여러분의 미래를 응원합니다.